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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풍

元基豊

미상 ~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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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원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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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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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함남 갑산
  • · 북청)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3)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이명은 원기봉(元基鳳)이었다. 1907년 12월부터 의병장으로서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홍원군(洪原郡)·북청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 이르러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을 장악하였다. 나아가 대한제국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동에 분노한 애국 지사들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시기인 1907년 12월 최동률(崔東律)과 함께 40여 명의 의병들을 규합하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뒤늦게 차도선(車道善)의 의병부대와 협력하여 함경남도 갑산군, 북청군 등지에서 의병부대를 확대하였고,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8년 3월에서 5월 사이에는 홍범도(洪範圖) 의병부대와 협력하여 활동하였다. 그 해 4월 최동률과 함께 약 90여 명의 의병을 데리고 북청군 니곡사(泥谷社) 삼기리(三岐里, 현 덕성군 삼기리)와 통파(通坡) 근처에서 활동하다가, 부대를 나누어 약 40여 명을 이끌고 함흥군(咸興郡)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같은 해 5월 28일 홍범도 등과 함께 의병들을 데리고 갑산군 괘탁리(掛卓里) 동북방(東北方) 구령(駒嶺)에서 일본 기병(騎兵)과 교전하다가 의병부대가 나누어져, 최학선(崔學善)과 함께 300여 명을 이끌고 북청군으로 진출하였다. 1908년 12월에는 갑산군, 북청군, 홍원군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9년에서 1910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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