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석
元仁石1888 ~ 1909.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전해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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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충청북도 영춘군(永春郡, 현 단양군 영춘면) 출신이다. 1909년 6월 17일 일제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당시 22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전해산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전해산(全海山)은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와 이석용(李錫庸)의 창의동맹단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음)정월 30일부터 전해산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그 해 (음)2월 22일에 동료 의병 5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함평군 읍내면(邑內面) 교동(校洞, 현 함평읍) 신창수(申昌須)의 집에 들어가 현금 1,500냥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22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해제면(海際面)의 박천릉(朴千陵), 김두언(金斗彦)에게서 엽전 500냥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에는 전해산 의병부대의 선봉인 임대장(林大將)이 인솔하는 의병 25명과 함께 전북 흥덕군(興德郡) 북면(北面) 후포(後浦, 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 소재 일본인 히라이 토쿠조(平井德藏)의 집에 들어가 그를 처단하고 금건(金巾) 1필, 옥양목 1필을 취하였다. 같은 해 4월 2일에는 동료 의병 50명과 함께 영광군 포천시장(苞川市場, 현 영광군 군남면 포천리)에서 영광읍내에 거주하는 조박사(趙博士)로부터 현금 2,000냥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6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살인죄·방화죄로 교형(絞刑)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7일 대구공소원과 8월 13일 대심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그 해 9월 11일 대구감옥에서 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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