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基亨
基亨1916. 2. 1 ~ 1947. 3.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본공산당 관서지방위원회 오사카시위원회
- · 일본공산청년동맹 오사카시위원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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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8) 1916년 2월 1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안덕면(安德面) 덕수리(德修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청원방부(淸原邦夫)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29년 개교한 일본 오사카(大阪) 소재 고노하나상업학교(此花商業學校)에 진학한 사실로 보아,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 경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배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학교에 다녔다. 1935년 1월 붙잡힐 당시 상업학교 3학년을 수료한 상태였다. 당시 일본지역 한인 사회주의운동은 일본공산당 및 일본공산청년동맹을 주축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들 단체는 주요 강령 중 하나로 식민지 해방을 설정하고 있어서 다수의 한인 청년들이 이에 참가하였다. 한인 청년들은 이 단체를 매개로 독립을 전취하는 한편, 조선공산당과 조선공산청년동맹 재건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당시 오사카에는 두 단체의 관서지방위원회(關西地方委員會) 산하 오사카시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단체에 제주 출신 청년들이 다수 가맹해 간부급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1933년 일본공산당 오사카시위원회 책임은 성산읍(城山邑) 출신 현호경(玄好景)이었고, 남지구(南地區) 담당은 상예리(上猊里) 출신의 강주호(姜周鎬)가 맡고 있었다. 일본공산청년동맹의 경우 책임은 제주읍 출신 정우생(鄭友生)이었으며, 남지구는 조천리(早天里) 출신 김태휴(金泰休) 담당에 부덕환(夫德環)이 회원이었다. 18세 나이로 두 단체에 가입하고, 남지구에 소속된 데에는 이 같은 동향 선배들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3년 하반기 이래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당과 청년동맹 조직이 파괴되고, 선배 다수가 체포되자 조직 재건 운동에 나섰다. 1934년 2월 초 심삼봉(沈三鳳)·임암우(林岩又)와 함께 일본공산청년동맹 오사카시위원회 반제(反帝)플랙션 위원에 임명되었다. 반제플랙션이란 반제국주의자들의 모임인 일본반제동맹 내 공산주의 그룹을 일컫는다. 동맹 내 당 세포조직을 재건하고 회원 획득에 힘썼다. 또한 동맹원들과 함께 천황제를 비판하는 전단지 「진무천황제(神武天皇祭) 및 반동 시위운동을 분쇄하라」를 배포하고, 비합법 메이데이 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남일남(南一男)과 함께 일본공산당 오사카시위원회 남지구준비위원회 위원으로 부임하여, 남지구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써 오사카지역 조선 청년들에게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한편, 민족의식을 드높이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35년 1월경 붙잡혔다. 조사 과정에서 일본공산당에 관계하고 있다는 이유로 같은 달 2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36년 6월 29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다. 최종 판결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옥중에서 잔혹한 고문과 학대를 겪었다. 이로 말미암아 출옥 당시에는 거의 사망에 이를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 생활을 했으나,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일제 경찰의 감시와 견제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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