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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旺錫

旺錫

1900. 6. 18 ~ 1967.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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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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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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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명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0년 6월 18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명지면(鳴旨面) 조동리(助東里,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잡화상으로 상업에 종사하다가 동창인 이진석(李鎭奭) 등과 함께 1919년 4월 10일과 11일 명지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명지면 만세운동은 명지면에 위치한 사립 동명학교(東鳴學校) 교사 이진석이 만세시위를 주도하며 촉발되었다. 이진석은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 만세시위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유년시절 동창이자 서울 경성약학학교(京城藥學學校)에 재학하고 있던 김연복(金淵輻)과 연락하여 독립선언문을 입수하였다. 이어 이진석은 함께 공부했던 고향 동창들에게 연락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타진하였다. 이때 이진석을 통해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만세운동 제안에 동참하여, 동창인 김영두(金榮斗)·이규회(李圭恢)·지봉구(池鳳九)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진석을 비롯한 동지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하여 만세운동 거사일을 중리(中里)에 위치한 명호(鳴湖)장터의 장날인 4월 10일로 결정하였다. 더욱 많은 동지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거사일 전날인 4월 9일 밤에는 이진석과 함께 철야 작업으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또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 준비에 착수하였다. 4월 10일의 날이 밝자 이진석·김영두 등 동지들과 함께 우선 동명학교 학생들을 중리 명호장터로 모이도록 하였다. 오후 2시경 명호장터에 많은 주민들이 나와 붐비기 시작하자, 준비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장터에 나온 학생과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이때 이진석은 태극기를 장대에 높이 달아 들고 장터 한복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100여 명의 주민들이 곧바로 호응하여 독립만세 구호를 따라 외쳤다. 이에 이들을 모아 시위대열을 조직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미 만세시위를 경계하고 있었던 일제 헌병들이 곧바로 출동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진압한 탓에 이날의 만세시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지 않고, 다음날인 4월 11일 박두성(朴斗成)·정소목(鄭小穆) 등과 함께 밤 10시경부터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주민들을 규합하여 진목리(眞木里)에서 다시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도 곧바로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탄압하며 해산시켰다. 명지면에서 연속하여 2차례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헌병대는 만세시위 주도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로 인해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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