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快述
快述1896. 5. 18 ~ 1942. 2.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밀양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7) 1896년 5월 18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현 밀양시) 내이리(內二里, 현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창씨개명은 양천정승(梁川正勝)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19년 3월 밀양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밀양면의 만세운동은 민족교육을 통해 강한 독립의식을 형성한 사립 동화중학교(同和中學校) 졸업생들이 주도하였다. 윤세주(尹世胄)와 윤치형(尹致衡)은 이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학교로 진학하여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개된 서울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어 이들은 고향 밀양에서 만세운동을 확산되기를 희망하며 이를 위해 지역으로 귀향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후 동화중학교장 전홍표(全鴻杓)의 지도를 받으며, 김병환(金餠煥)·이장수(李章守)·윤보은(尹輔殷) 등을 동지로 모아 밀양면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윤세주·윤치형 등은 동지들과 협의하여 밀양면의 장날인 3월 13일을 만세운동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이후 윤세주 등은 밀양면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훔쳐 위북산(偉北山)에서 철야로 독립선언문 수백 매를 등사하고, 윤치형은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큰 깃발과 작은 태극기 수십 개를 만들어 김병환(金餠煥)에게 교부하였다. 또 지역별로 만세시위 계획을 사전에 알리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처럼 만세운동이 준비되고 있을 때, 3월 13일 밀양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을 사전에 연락 받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3월 13일 아침 일찍, 만세시위에 참여하고자 밀양 장터로 향하였다. 만세시위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지만 시위는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 1시 30분경, 갑자기 윤치형·이장수 등이 장터 중앙부인 밀양공립보통학교(密陽公立普通學校) 앞 도로로 나와 태극기를 펼쳐들었고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를 보자마자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도로로 뛰어들었다. 이어 1,000명의 주민들이 모이자 윤세주가 주민들 앞으로 나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다. 그 사이 다른 시위 주도자들은 등사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때 박소종(朴小宗)으로부터 태극기를 받아들고 시위대열을 동참하였다. 선두의 대형 깃발을 뒤따라 밀양장터 곳곳을 행진하면서, 윤치형의 선창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밀양장터에서 1,0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이를 탄압하기 위해 부산에서 헌병대와 수비대 10여 명을 밀양으로 급파하였다. 일제 헌병대와 수비대는 밀양에 도착한 후 밀양의 일제 경찰과 헌병들과 합세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강제 해산시키는 동시에 주요 인물들을 붙잡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윤치형·윤소룡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