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휘연
權徽淵1845 ~ 1896. 3.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전기의병(을미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45년경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서변리(西邊里)에서 출생하였다. 유생 신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본관 또는 성장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1896년 을미의병(乙未義兵) 당시 김상종(金象鍾)이 이끄는 의성의병에 참가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보호국화를 시도하였으나, 이내 발생한 삼국 간섭에 의해 일본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뒤집고자 한 일본은 1895년 10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여기에 동년 11월 내부대신 유길준(俞吉濬)이 단발령을 공포함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을미의병이다. 을미의병 운동이 전개되던 당시 경북 지역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1896년 1월 20일 안동(安東)을 위시로 예안(禮安)·청송(靑松)·영양(英陽)·영덕(盈德)·봉화(奉化)·예천(醴泉)·의성(義城) 등 경북 14개 군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 의성 지역의 의병 봉기를 주도하였던 것은 김상종이다. 의성 지역의 유생들은 1896년 3월 3일경에 향교에서 통문을 돌리고, 3월 14일 향회를 개최하여 김상종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김상종은 의병을 모집, 3월 25일 창의하였다. 중군장 권대직(權大稷), 선봉장 김수담(金壽聃), 우익장 이희정, 소모장 김수욱(金壽旭), 관향장 김수협(金壽莢) 등이 의병부대를 구성하였다. 의성의병을 주도한 것은 김상종·김회종 형제와 김수담·김수욱·김수협 등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 대대로 사는 김상종의 족숙이었다. 그는 김상종의 동생인 김회종과 절친한 관계로 서상부(徐相孚) 등과 함께 의성 의병이 봉기하던 당시부터 함께하였다. 1896년 3월 29일 순국하였다. 단 다른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행적이 확인된다. 의성 의병은 1896년 4월 2일 의성읍 구봉산(九峰山)에서 관군과의 첫 전투를 치렀다. 4월 1일 오후 남쪽에서 관군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의병부대는 읍내 뒤 구봉산에 진을 치고 대비하였다. 이튿날인 2일 새벽 관군이 의병부대를 공격하였고, 이날 오후 1시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김회종의 『병신창의실록(丙申倡義實錄)』에 따르면 이날 전투에서 의병은 다친 사람이 없었지만, 관군은 탄환에 맞은 자가 20여 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군의 계속되는 공격에 의병부대는 결국 읍내를 포기하고 물러났다. 관군은 의성 읍내의 집들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적원일기(赤猿日記)』에 따르면 4월 2일 관군이 성내의 관공서와 민가를 소멸하여 폐허가 되었다고 하며, 4월 7일에는 의성읍이 불타 800여 호 가운데 겨우 100호만이 남았다고 한다. 다음 전투는 5월 10일 황산(黃山)에서 있었다. 대구와 군위의 관군이 그 상대였다. 이날은 전투 중에 큰비가 내려 화약을 쓸 수 없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김수담·김수협 등이 사망하였다. 『병신창의실록』에 따르면 관군은 황산에서 27명, 고무곡에서 2명 등 모두 29명의 의병을 죽이고, 의병장 김상종의 고향인 사촌의 민가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 황산전투에서 전사하여 순국하였다. 이후 의성의병은 5월 25일 관군과 교전하였다. 의병장 김상종이 헛되이 죽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여 각자 해산할 것을 명령함에 따라 활동을 종료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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