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중
安孝中1893. 11. 20 ~ 1950. 2.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대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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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3년 11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대산면(代山面) 하기리(下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함안군 대산면 평림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삼남 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함안 지역 만세운동은 1919년 고종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던 지역 인사들이 서울의 만세운동을 접하고 3월 5일 돌아와 그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최초 만세시위는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3월 9일 칠북면(漆北面) 이령리(二靈里) 연개장터에서 일어났고, 이후 3월 12일과 17일 대산면(代山面) 평림장터 시위로 이어졌다. 서울의 만세 소식을 전해 듣고 평림리 교회의 권영수(權英洙)·김성근(金聖根), 하기리 교회의 문덕중(文德中)·최말종(崔末鍾) 등 인사들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여 3월 12일 평림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평림장터 만세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 이령리 연개장터 시위 계획을 통보받았고, 3월 9일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여기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3월 12일 시위 준비를 위해 평림리 교회와 하기리 교회에서 진행된 태극기 제작에 참여하였다. 거사일에는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 시위는 일제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시위를 주도한 권영수와 김성근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를 피하고 3월 17일 평림장터에서 일어난 제2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수백 명의 만세 군중을 지휘하여 면사무소로 나아갔고, 체포된 권영수와 김성근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다시 일제 경찰이 진압에 나섰고, 주도 인물로 붙잡혔다.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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