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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奉祚

奉祚

1888 ~ 195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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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奉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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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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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비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枇峴面) 체마동(替馬洞)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32세로 기록된 것을 보아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3일 평북 의주군 비현면 체마동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의주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의주 읍내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유여대(劉如大) 목사가 직접 준비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에서 시작되었다. 3월 1일,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의주 읍내에 위치한 서부교회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의주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튿날인 3월 2일에는 남대문 밖 광장에서 기독교도와 천도교도 등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동시에 천도교 의주 교구에서는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이를 시내에 뿌리는 한편,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주변 지역에 전파하였다. 고종의 장례식이었던 1919년 3월 3일 읍내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의주군 비현면에서도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비현면 체마동 일대에서 3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불렀는데, 이때 참여하여 만세를 불렀다. 시위에 참여하기 전 이미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문제를 채택하고 일본도 이를 승인하였다는 소식을 신문들을 접하여 알게 되었는데, 독립을 소원하며 이에 관한 의사를 밝히면 한국의 독립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에 거주지 인근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나는 것을 듣자 만세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제 헌병들은 비현면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으며, 이때 주도자를 비롯한 참여자 7명과 함께 붙잡혀 헌병대에서 심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1919년 5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파리강화회의의 결정을 전 세계가 찬성하는 가운데 본인도 그것에 찬성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보안법 위반이 될 수 없다며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이후에는 비현면 체마동 일대에서 생활하며 체마교회(替馬敎會)에 부속된 의주 신성학교(信成學校) 고등과(高等科) 설치를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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