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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도

楊成道

1880. 9. 28 ~ 196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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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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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군산읍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0년 9월 28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관촌면(館村面) 방수리(芳水里)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예수교병원(耶蘇敎病院) 사무원(事務員)으로 근무하였으며, 1919년 3월 5일 군산읍(群山邑)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군산읍 시위는 옥구군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 예수교회 부속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와 예수교회부속여학교(耶蘇敎會附屬女學校) 교사 고석주(高錫柱)가 독립선언서를 구비해 온 김병수(金秉洙)의 권유에 따라 3월 6일 군산읍 장날에 만세운동을 시작하기로 협의하면서 진행되었다. 이들은 옥구군 구암리 일대 예수교병원 사무원들과 영명학교 학생들을 독려하여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준비하였고, 독립선언서를 복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때 예수교병원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5일 만세시위 계획을 미리 알아차린 군산경찰서 경찰들이 영명학교를 급습하여 이두열·박연세·고석주·김수영 등 교사들이 붙잡히자 영명학교 학생들과 예수교병원 사무원들은 3월 6일로 예정된 시위를 하루 앞당겼다. 그리하여 3월 5일에 시위대와 함께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에서 출발해 군산경찰서 앞까지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때 태극기를 흔들며 군산부로 행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외쳤다. 마침내 군산부에 도착하여 군산경찰서 앞과 기타 관공서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군산경찰서는 3월 5일~3월 8일 사이에 이리에 주둔하던 헌병분대의 지원으로 만세시위 참여자 90명을 붙잡았다. 이때 군산경찰서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후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했으나 그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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