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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順西

順西

미상 ~ 191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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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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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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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장안면
  • · 우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경기도 수원군(水原軍) 장안면(長安面) 장안리(長安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우정면(雨汀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장안면·우정면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고향에 돌아온 백낙열(白樂烈)·김성렬(金聖烈) 등이 비밀리에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며 진행되었다. 이때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장제덕(張濟德)·이영쇠(李永釗)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어 동지들과 함께 1919년 4월 3일 장안면 석포리(石浦里)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면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날 시위군중을 이끌고 장안면 조암(朝岩)장터로 이동하였다. 조암 장터에서 시위 주도자 차희식이 등단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2,0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차희식의 낭독이 끝난 후 다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후 시위군중을 이끌고 장안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고, 도착한 후 포위하였다. 이어 선두에 서서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면장인 김현묵(金賢默)을 끌고 나와 ‘대한독립만세’ 삼창을 시켰다. 그리고 면장 김현묵을 앞세우며 쌍봉산(雙峯山)으로 향했고 정상에 올라서서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친 다음 우정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한 후에는 시위 군중들과 함께 내부에 있는 서류를 불태우고 돌을 던져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나서 한각리(閑角里)에 있는 작은 산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때 모인 군중들이 2,000여 명에 달했다. 이후 2,000여 명의 시위 군중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우정면 화수리(花樹里)에 위치한 화수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주재소에 있던 일제 경찰들은 시위 군중들에게 실탄 사격을 하면서 만세시위를 저지하려고 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면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졌다. 격렬한 투석전 끝에 마침내 일본인 순사 가와바다 도요타로(川端豊太郞)을 처단하고 한국인 순사보 이용상(李龍相)을 붙잡아 구타하였다. 일제 경찰들을 제압한 다음 시위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를 불태워 파괴하였다. 이후 사랑리(砂浪里) 남산(南山)으로 이동하여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치고 자진 해산하였다. 장안면·우정면 만세운동이 끝난 후 일제 경찰들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1919년 4월 10일, 차희섭·이영쇠 등 시위대 주도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주재소에서 잔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이튿날인 4월 1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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