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云七
云七1887. 8. 24 ~ 1941. 5.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7년 8월 24일 충남 홍성군 금마면(金馬面) 죽림리(竹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와 4월 2일 홍성시장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4월 1일 가산리의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시작되었다. 3월 1일 서울에서부터 일어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가 확산되고 있음을 파악한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은 이재만(李載萬)과 함께 홍성군 금마면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협의하였다. 이어 민영갑과 이재만은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적극적인 시위 동참자로 확보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1일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이 자리에 모일 것이고, 이때 한국 독립을 호소하면서 주민들을 독려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이었다. 만세시위 거사날인 4월 1일, 이원교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장에서 연극공연이 시작되었으며, 한참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이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곧바로 다른 관중 수십 명과 함께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에 동참하였다. 연극공연 관람은 순식간에 만세시위로 전환되었고,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이 이를 탄압하여,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만세시위 참여자들과 다음날인 4월 2일 홍성시장에서 계속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날, 민영갑·이재만 등과 함께 홍성시장에 나가 또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위에 있는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시장에 나온 군중이 참여하면서 전날의 연극공연장 시위보다 시위대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날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진행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어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자로 분류되어 1919년 4월 19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