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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在元

在元

1900. 6. 30 ~ 197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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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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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산양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0년 6월 30일에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조일정(朝日町)에 거주하였으며, 그 해 4월 통영군 산양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여 시위 격문을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9일과 3월 12일, 통영향교 장의(掌儀) 진평헌(陳平軒), 통영면사무소 서기 강세제(姜世濟), 이학이(李學伊) 등이 모여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수립하였다. 시위 준비과정에서 진평헌은 독립선언서를 구하지 못하자 직접 ‘동포에 격하노라’라는 격문을 만들었다. 이때 완성된 격문을 등사하기 위해 3월 13일 진평헌·배익조(裵益祚)와 함께 통영면사무소에서 빌린 등사판과 산양면사무소가 가지고 있던 등사판을 이용하여 격문 600장을 등사하였다. 하지만 제작한 격문은 실제로 배포되지 못하였다. 시위 주도자들의 등사용 용지 구입을 사전에 알아낸 일제 경찰은 등사판을 통영면사무소에 되돌려 놓기 위해 이동하던 이학이·강세제 등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인쇄물을 들고 통영으로 돌아오던 중 잠복한 일제 경찰에 의해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1919년 5월 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과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고 1920년 1월에 풀려났다. 풀러난 후 지역 사회에서 교육 활동에 주력하였다. 화양교육회를 조직하고, 동광학원을 세워 4년 동안 남녀 170여 명을 교육하였다. 또한 1922년 3월 1일부터 통영천도교 청년회에서 주최하는 야학에 강사로 참여하였다. 한편 통영지역 청년단체의 지도급 인물로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25일 통영청년연맹을 결성하였는데,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통영기자단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청년단체 뿐만 아니라 통영지역 사상단체의 효시가 되는 정의단(正義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어 1927년에는 통영지역 사상단체들을 통합한 정화회(正火會)가 조직되었는데 정화회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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