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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양섭

嚴陽燮

1878. 2. 3 ~ 193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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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엄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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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화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78년 2월 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산정리(山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과 7일 이틀 간 일어난 화성면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화성면의 만세운동은 산정리의 박공삼(朴公三)과 조남희(趙南熙)가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5일 박공삼과 조남희는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여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운동의 소식을 전하고, 산정리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촉구하였다. 이 자리에서 크게 공감하여 조경희(趙景熙)·김정봉(金正鳳)·김종문(金鍾文)·박태선(朴泰善)·유치서(柳致筮)·황지수(黃芝秀)·윤철선(尹喆善)·채규만(蔡奎萬)·채규성(蔡圭成)·채인석(蔡仁錫)·신성길(申成吉) 등 주민 2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박공삼과 조남희의 지휘에 따라 정자동(亭子洞)에 태극기 2기를 게양하고, 큰 종을 울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다음날인 4월 6일에는 박공삼·조남희의 지휘 아래 아침부터 전날 시위에 참여한 산정리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화성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0시 경으로 면사무소는 증축 공사 중이었다. 박공삼은 증축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목수와 인부들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증축 공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중축 공사를 중단할 것을 압박하여 이들이 물러나도록 하였다. 그 후 박공삼이 돌을 던지며 공사 현장을 습격하기 시작하자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 공사 현장 습격에 동참하여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끌려갔다. 헌병대의 조사과정에서 2일 간의 화성면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6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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