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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신

嚴柱信

1890. 4. 15 ~ 197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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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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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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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칠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0년 4월 15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칠원면(漆原面) 무릉리(武陵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과 4월 3일에 일어난 함안군 칠원면 칠원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지역 유림의 집안에서 태어나 한문 교육을 받았고, 특히 한의학에 정진하여 한의사로 성장하였고, 한약방을 경영하였다. 함안군 칠원면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9일 칠북면(漆北面) 이령리(二靈里) 연개장터 시위를 시작으로 4월까지 각 지역에서 연쇄적으로 진행된 함안 지역 만세운동 속에 있었다. 고종 장례에 참여하고 돌아온 지역 인사들이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함안 지역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칠원면에서는 구성리(龜城里)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와 칠원면의 유력 유림 가문들이 결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구성리 교회의 손종일(孫鐘一)과 박순익(朴順益), 밀양 박씨 가문의 원로 박경천(朴敬天)·황영환(黃英煥)·신영경(辛泳慶)·윤사문(尹士文)·김상률(金相律) 등이 만세시위 주도에 함께 하였다. 거사 논의와 구체적인 계획 수립, 그리고 준비 작업은 용산리의 산중에 위치한 가장정(佳藏亭)에서 이루어졌다. 거사일은 구성리의 장날인 3월 24일로 결정하였다. 이와 동시에 만세시위에 참가하는 군중들에게 나눠줄 태극기와 독립선언 전단 제작,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 등 역할을 분담하였다. 이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제작에 필요한 종이 제공을 담당하였다. 한약방을 경영하고 있어, 의령군(宜寧郡) 신반리(新反里)에서 약봉지를 만든다고 하여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구성리 장날인 3월 24일 오후 4시경 1천 명이 장터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자, 만세 군중의 선두에서 시위대를 선도하여 칠원면 경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그러나 3월 19일과 20일, 함안 읍내와 군북면에서 수천 명의 대규모 시위를 경험한 일제 군경이 무자비한 진압을 전개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황영환, 신영경 등 시위대를 이끌었던 주도자들이 붙잡혔다. 그러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4월 3일 손종일 등과 함께 2차 시위를 일으켰다. 1차 만세시위 때보다 많은 1,300여 명의 군중이 모여서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경찰관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하고 선두에 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군중들은 1차 만세시위 때와 달리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다. 투석전을 전개하였고, 몽둥이를 들고 일제 경찰들과 맞섰다. 그러나 총검을 휘두르는 일제 군경에 진압되었고, 손종일·박순익·박경천 등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졌고, 1919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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