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준섭
嚴俊燮1874. 9. 2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신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74년 9월 20일 함경남도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 신하리(新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3월 14일 장진군 신남면 고토리(古土里)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함경남도 장진군에서의 첫 번째 만세시위는 신남면 고토리(古土里)에서 발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 고토리 수시(水市)에 신남면 고토리·신하리·중흥리(中興里)·신중리(新中里)·만풍리(萬豐里)·신흥리(新興里) 등 6개 마을 약 200명의 주민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고토리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고토리 헌병주재소(憲兵駐在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시위대가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헌병들은 칼과 곤봉으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강력하게 저항하며 주재소를 공격하고 일부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 함흥-장진 간 전화선 절단을 시도하였다. 헌병들은 시위가 격해지자 진압하기 위해 실탄을 발사하였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재소를 탈출한 헌병보조원 1명이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하기천면(下岐川面) 하통리(下通里) 헌병주재소에 도착하여 헌병과 헌병보조원 등이 행방불명되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그 결과 신남면 하갈우리(下碣隅里) 헌병주재소 헌병들이 고토리로 출동하여 진압을 지원하였고, 이 과정에서 헌병들에게 시위대 2명이 희생되었다. 이후 시위대 일부가 헌병보조원을 찾기 위하여 계속 고토리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일본인 주점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이후 헌병들에게 82명이 체포될 때 붙잡혀 41명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라며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