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권
嚴昌權1890. 11. 19 ~ 1932. 4.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안악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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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0년 11월 19일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용안면(龍安面) 장산리(長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28일 안악군 안악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7개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황해도 안악군에서는 같은 해 3월 11일 은홍면(銀紅面) 온정시장(溫井市場)에서 처음 만세시위가 있었다. 일제 군경이 사전 검속을 단행함으로써 안악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악군에서는 만세시위를 일으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안악면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비밀리에 결의하였다. 안악면 만세시위의 준비와 실행은 주로 대원면(大遠面) 가양리(可陽里)의 예수교회 소속 개신교인들이 맡았고, 이때 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정오 무렵 대원면 가양리 예수교회의 교인인 이용삼(李容三)이 읍내 예수교회당의 종을 쳤다. 읍내에 종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을 시작하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였으며, 개신교인 임승문(林承文)·임동균(林東均)이 일제 군경의 가혹한 구타로 중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7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한 행위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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