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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세병

余世炳

1897. 5. 22 ~ 197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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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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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宜寧)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의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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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의령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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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5월 22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칠곡면(七谷面) 도산리(陶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과 15일에 일어난 의령군 의령면 읍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고, 3월 17일에는 칠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의령군 최초의 만세시위는 3월 14일 의령면 읍내 장날에 일어났다. 수천 명이 참가한 이 만세시위는 구여순(具汝淳)이 상경하여 서울의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구여순은 최정학(崔正學)·정용식(鄭容軾)·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 등 뜻을 같이하는 지역의 민족주의 인사들을 모아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2시, 읍내 의령향교 앞에서 구여순의 연설로 시작된 만세시위에 읍내로 가서 적극 참여하였다. 의령공립보통학교 학생 300명을 포함하여 군내 각 지역에서 3,000명 정도가 참여한 만세시위는 3월 16일까지 이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비가 왔던 3월 15일에도 1,500명이 모였다. 군내 중심부에서 연일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마산의 일본군 포병대까지 파견되어 폭압적인 진압을 전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 중심부를 행진하고, 군청·경찰주재소 등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적 기관들 앞으로 나아갔다. 3일간 군내 중심가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낀 일제 군경은 대대적인 시위 주도자 색출에 나섰고,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거주지인 칠곡면에서 여찬엽(余燦燁) 등과 함께 3월 17일 밤에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200여 명의 군중이 면 중심부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면사무소로 몰려가서 기물과 유리창을 파손하는 등 물리력을 동반한 격렬한 시위를 일으켰다. 1919년 3월 14일 최초의 만세시위가 있은 이후 매일 시위가 이어졌으며, 군내 5일장 개최 지역을 따라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일제 군경은 대대적인 시위 주도자 체포 작전에 나섰다. 의령군내에서 100명 이상이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때 일제 군경의 검거망을 피하지 못하고 여찬엽 등과 함께 붙잡혔다. 고문을 동반한 조사에 굴하지 않았으나 결국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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