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呂太周

太周

186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呂太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벽동(碧潼)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벽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벽동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대평면(大平面) 하평동(下平洞)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51세로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고,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에 걸쳐 일어난 벽동군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벽동군의 만세운동은 의주(義州)의 유여대(劉如大) 목사에 의해 전해진 독립선언서에 의하여 초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천도교(天道敎) 벽동교구에서 교조(敎祖) 최제우의 순도(殉道) 기념일을 맞아 천도교도 수백 명이 모여 기념식을 지낸 후 독립선언서를 살포하며 만세를 외치고 행진하였다. 이후 3월 30일과 3월 31일에도 벽동 읍내에서 천도교도들을 중심으로 하여 200~3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시위를 벌이다가 헌병이 출동하여 해산한 바 있었으며, 4월 1일 읍내의 장날을 맞아서는 8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큰 시위가 일어나 여러 명이 다치고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3월말, 천도교인 김명각(金明珏) 등 6명에게 “각지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니, 천도교도들도 이때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3월 31일부터 3일 동안 벽동 읍내에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운동이 거행될 것이니 힘써 참가하라”고 전달하였다. 이후 벽동군 읍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시위에 참여하여 만세를 부르고, 행진하다가 일제 헌병에 의해 붙잡혔다. 이 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명각 등에게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는 이유로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사람들을 선동한 사실이 없고 단순히 참여하였을 뿐이며, 조선 민족으로서 조선 독립을 축하하지 않을 자는 없다”며 항소하였지만, 1919년 6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재차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