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呂鎬鎭

鎬鎭

1888. 3. 15 ~ 1947. 3. 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呂鎬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성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8년 3월 15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벽진면(碧珍面) 해평동(海平洞)에서 여정규(呂鼎奎)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자는 응도(應都)이다. 1919년 4월 일어난 성주읍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성주읍 만세시위는 유림과 기독교 세력이 연합하여 계획하면서 진행되었다. 만세시위 거사날인 4월 2일 오후 1시, 성주면 경산동(慶山洞) 관제묘 뒷산에 모인 기독교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고창했고 곧 이어 유림 측 약 60명도 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경찰이 시위 주도자들을 붙잡고 시위대를 탄압하자, 분노한 군중들이 더욱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시위대 숫자는 약 1,500명으로 늘어났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만세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온 여왕연(呂旺淵)·여우룡(呂又龍)으로부터 일제 경찰의 야만적인 발포로 많은 시위 참여자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날 밤 11시 여홍연(呂弘淵)·여우룡·여왕연·도무환(都武煥) 등과 함께 성주읍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돌아오는 군중 200여 명을 규합하였다. 이어 벽진면 해평동 월회당(月會堂) 앞 도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밤늦도록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한 벽진주재소 순사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여한 군중과 함께 밤늦도록 시위를 벌이고 흩어진 후 시위 주도자 여홍연·여우룡·여문회·여왕연·도무환 등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