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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弘淵

弘淵

1879. 6. 13 ~ 193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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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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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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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성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6월 13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벽진면(碧珍面) 해평동(海平洞)에서 여임해(呂林會)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호는 제송(霽松)이고, 자는 진원(振源)이다. 1919년 4월 일어난 성주읍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한말에 교관(敎官)으로 재직하다가 을사늑약 이후 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1908년 11월 대한협회(大韓協會) 성주지회(星州支會)가 설립된 뒤, 12월 8일 개최된 조직총회(組織總會)에서 찬의원(贊議員)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때 김창숙(金昌淑) 등과 함께 대한협회 성주지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 변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부터 성주군 기독교 세력과 유림 세력의 연합으로 전개된 성주읍 장날 만세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온 여왕연(呂旺淵)·여우룡(呂又龍)으로부터 일제 경찰의 야만적인 시위 진압으로 이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이날 밤 11시 여우룡·여왕연·여호진(呂鎬鎭)·도무환(都武煥) 등과 함께 성주읍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돌아오는 군중 200여 명을 모았다. 이어 벽진면 해평동 월회당(月會堂) 앞 도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밤늦도록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한 벽진주재소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군중과 함께 밤늦도록 시위를 벌인 뒤 흩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 시위 주도자 여우룡·여문회·여왕연·여호진·도무환 등과 함께 모두 6명이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여왕연·여우룡·여문회 등과 함께 상고하였으나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최종 징역 1년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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