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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섭

吳尙涉

미상 ~ 19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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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상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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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3.1운동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구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3월에서 4월에 걸친 평안북도 구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희생되었다. 평북 구성군의 만세운동은 구성읍(龜城邑)을 비롯하여 남시(南市)와 신시(新市) 등지에서 대규모의 인원이 참가하여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구성군에서 처음으로 시위를 계획한 인물은 최예락(崔禮洛)이었다. 최예락은 경성민회에 속한 인물로부터 독립선언서와 주의서를 각각 500매 씩 받았으며, 태극기와 독립기의 문양 또한 전달받아 이를 가까운 동료인 최성진(崔成珍)·양인항(梁仁恒)과 공유하여 남시에서의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시위 당일 시장 한가운데에 태극기를 높이 내걸고 시위에 참여할 군중을 모집하였다. 곧 시장에 나온 1,000여 명의 주민들이 태극기 아래로 모였고, 최예락 등은 준비해 온 선언서와 문건을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독립기를 나누어 주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1일에는 400여 명이 다시 남시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며 헌병주재소를 향하여 행진했고,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헌병대가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대응을 하며 시위 주도 인물 15명을 체포하였다. 3월 30일 구성읍내에서 3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대규모의 시위가 시작되어 오전과 오후 두차례로 나누어 읍내 성안으로 진격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헌병이 강제로 해산시키려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수 명 나오게 되었다. 장날이던 3월 31일에 남시에서 일어난 시위는 가장 큰 규모로, 5,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불렀으며, 곧 헌병주재소로 행진하여 주재소를 포위하였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헌병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여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같은 날 신시에서도 1,000여 명의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다음날인 4월 1일에는 구성읍내·남시·신시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1919년 3월에서 4월 초에 걸쳐 구성군 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앞장서서 참여하다가,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하여 쏜 총을 맞고 시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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