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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남

吳承南

1899. 7. 5 ~ 198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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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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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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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강진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7월 5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서성리(西城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강진군 강진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일본의 한국병합을 유감으로 여기고 독립을 꿈꾸었다. 서울의 사립 국어보급학교에 재학하던 1919년 3월 31일 강진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려고 귀향하였다. 강진에 갈 때 독립가(獨立歌)를 휴대하였다. 4월 1일 이기성(李基性)을 만나서 그가 계획하던 강진의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3일 밤 자신이 만든 태극기와 선언서를 이기성에게 전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 무렵 이기성·황호경(黃鎬京)·김현봉(金炫奉)·김춘석(金春錫)과 함께 이기성의 집에 모여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 300개, 선언서 약 70통, 독립가 약 20통을 가지고 강진시장으로 갔다. 강진시장에서 모여든 500여 명의 군중에게 준비했던 태극기와 선언서, 독립가 등을 나눠주면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3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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