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옥
禹顯玉1878. 2. 30 ~ 1935. 4.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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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78년 (음)2월 3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정산면(定山面) 정산시장의 만세시위와 권흥규 운구행렬 도중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목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5일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이 주도한 정산시장 만세시위와 연결되어 전개되었다. 4월 5일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이 열리자, 오후 3시부터 홍범섭 등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출동한 일제 헌병들에게 시위 주도자들이 폭력적으로 연행되는 모습에 분노한 군중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 헌병은 해산을 종용하면서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를 계기로 만세시위는 다음날 목면으로 확장되었다.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친인척들과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을 앞세우고, 권흥규의 시신을 운구하였다. 운구가 지나는 길목의 마을마다 많은 주민들이 나와 노제를 지내고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이미 전날 정산시장 만세시위와 권흥규의 사망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운구가 화양리를 경유할 때를 기다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운구행렬에 참여하였다. 목면 지곡리(地谷里)를 지날 즈음부터 운구행렬 속에서는 태극기가 배포되었고,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적극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고인의 자택이 있는 안심리(安心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운구행렬이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환되자, 일제는 정산의 헌병과 함께 공주(公州) 주재의 헌병까지 목면으로 급파하였다. 공주의 일제 헌병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운구행렬을 마주치자마자 무차별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전날에 이어 다수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부상당하는 참극이 발생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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