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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낙구

元洛龜

187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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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원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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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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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중화군 상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천곡면(天谷面) 이암리(里岩里, 현 평양시 상원군 번동리)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6세로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중화군 상원면 신읍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는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1919년 3월 2일 중화군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이다. 3월 1일 평양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고,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소식은 그날 바로 상원면 신읍으로 전달되었다. 이에 다음날인 3월 2일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대는 그동안 원한이 쌓인 순사주재소로 몰려가서 주재소의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려 하자, 만세시위대는 다수의 힘으로 일제 경찰들을 주재소 안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총기와 탄약 등을 탈취하였다. 또한 당시 지역 순찰을 위해 상원 신읍을 방문하고 있던 중화군의 경찰서장을 감금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는 평양경무부를 통해 지원병력을 상원 읍내로 급파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대를 탄압하고 다수의 주민들을 붙잡았다. 이와 같은 만세시위의 소식이 주변으로 전파되자, 다음날인 3월 3일에는 천도교인과 기독교인들이 각각 새로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먼저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은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은 오후 3시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가 행진을 전개하였다. 이후 약 50명의 주민들이 다시 주재소를 습격하여 피검자를 탈환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주민들에 의해 감금된 경찰서장을 빼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일제 군경과 격투가 벌어져 일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오후 4시에는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에도 일제 군대와 시위대가 충돌하여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다수의 주민들이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이날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일제 군경에 맞서 격렬히 저항하다가 만세시위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어 김치선(金致善)·박관준(朴觀濬) 등과 함께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평양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형을 받았는데, 정확한 판결 날짜와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스스로 자유를 주장하여 독립을 하려고 함은 정의, 공도(公道)에 적합하고, 한민족이 독립만세를 부름은 당연한 이치”라는 취지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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