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병욱
元炳郁1874 ~ 1950. 5.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옹진군 동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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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황해도 옹진군(瓮津郡) 동남면(東南面) 전당리(錢塘里) 출신이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46세로 기재되어 있어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옹진군 동남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으며,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일 황해도 옹진군에 독립선언서와 각지의 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졌다. 2월 28일 오전 8시 무렵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출신으로 서울 협성보통학교(協成普通學校) 교사를 하고 있던 개신교인 김명신(金明信)은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회당에서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박희도(朴熙道)를 만났다. 박희도는 김명신에게 독립선언서를 해주와 옹진의 기독교 목사들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2월 28일 저녁 무렵 김명신은 해주군의 황학소(黃鶴巢)를 만나서 독립선언서 300부를 전달한 후 옹진군으로 이동하였다. 3월 1일 옹진군 마산면(馬山面) 온천리(溫泉里, 현 옹진군 옹진읍)의 마산교회를 방문하였으나 목사 곽정숭(郭貞崧)이 자리를 비운 관계로 전도사 이경호(李京鎬)에게 독립선언서 150장을 건내 주었다. 3월 1일 오후 2시 이경호는 교회당에서 김영만(金永萬)·최희승(崔熙昇)·김선수(金善洙)·조충성(曺忠誠) 등을 만난 자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들은 옹진군내에 독립선언서를 붙이기 시작하였으나 김선수가 옹진헌병분대에 붙잡히기도 하였다. 한편 김명신을 통해서 이경호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옹진군 일대 교회에 배포되었다. 3월 2일 동남면 전당리의 기독교 교회당에서 김응두(金應斗)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응두와 함께 동남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는데 찬성하였다. 3월 3일 김응두는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귀가하였다. 그날 저녁 6시 무렵 교회당에 기독교인 40여 명이 고종 봉도식(奉悼式)을 진행하기 위해서 모이자, 김응두는 교인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보여주었다. 봉도식을 마칠 무렵 옹진군 마산면 마산장터(온정시장(溫井市場)이라고도 불림)에 갔던 주민 20여 명이 귀가하였다. 그들은 그 날 마산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있었음을 전하면서 동남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교회당에 있던 교인들이 합세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등법원 판결문에 의하면 “민족자결문제가 제출되었음을 듣고 기쁨을 견디지 못하고 화창(和唱)”했다고 진술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4월 17일 동남면 만세시위를 계획한 혐의로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에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민족자결주의 소식을 듣고 독립만세를 외친 행위는 보안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상고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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