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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규

吳成奎

1924. 8. 21 ~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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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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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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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8월 21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서 태어났다. 선천군에 있는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 평톈(奉天) 소재의 동광중학(東光中學)에서 수학하였다. 동광중학 재학 중 이영순(李英淳), 조승희(趙昇熙) 등과 함께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던 중 조직이 일제에 노출되자 동지들과 함께 평톈을 탈출하였다. 이후 베이징(北平)을 경유하여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고 제1구대 1분대에 소속되었다. 1945년 5월 미군과의 군사 합작이 결정되자 김영일(金永逸) 등 20여 명의 대원들과 함께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훈련생으로 선발되었다. 독수리 작전은 미 전략첩보기구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과 광복군 지도부가 한미연합작전으로 최종 승인한 첩보작전이었다. 각각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에서 적합한 대원들을 선발해 한반도에 잠입 후 국내 침투와 시설 파괴, 게릴라전을 전개한다는 목적이었다. 이에 독수리 작전 요원으로 선발되어 OSS 첩보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수료한 대원들의 목표는 미군 상륙 시 국내 내부의 호응 봉기를 일으키려는 것이었으나, 8월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국내 진공 작전은 수행되지 못하였다. 광복 이후 중국 전 지역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의 보호 문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일제의 점령 지역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인의 보복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광복군은 군사특파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상하이(上海)지구 특파단원으로 파견되어 지역에서 붙잡혀있던 동지와 한국인들을 풀어주었다. 한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한편, 중국군과 협조하여 지역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였다. 2023년 마지막 생을 고국에서 보내고자 100세 나이에 고국으로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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