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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록

吳上祿

1913. 1. 2 ~ 196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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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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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海南)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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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3년 1월 2일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본적은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산이면(山二面) 상공리(相公里)이다. 이명으로 오서록(吳徐録)을 사용하였다. 목포상업학교(木浦商業學校) 재학 중 최창호(崔昌鎬)의 권유에 따라 1929년 10월 목포 유달산(儒達山)에서 사회주의 성향의 학생 비밀결사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11월 7일, 러시아혁명 기념일을 맞아 최창호·강영수(姜榮秀)·권영욱(權永郁) 등과 함께 북교동(北橋洞) 이상원(李尙源)의 집에 모여 러시아혁명사를 공부하다가 그 해 11월 3일 광주에서 대대적인 학생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어 11월 16일, 이광우(李光雨)의 집에 동료 학생들과 모여 광주학생운동에 관한 전말을 파악하고, 목포상업학교 한국인 학생들을 집결하여 동맹휴학과 항일 시위를추진할 것을 협의하였다. 시위를 준비하면서 선전 유인물, 적기(赤旗), 항일 격문을 제작하는데 동참하였다. 11월 19일 오후 1시경,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부근에서 항일 시위를 시작하였다. 남교동에서 무안동(務安洞)을 거쳐 목포역을 둘러 공설 시장까지 ‘피감금 학생 즉시 탈환’, ‘총독 폭압 정치 절대 반대’라고 쓴 큰 깃발을 들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동지 조창섭(趙昌燮)·박사배(朴仕培) 등과 함께 목포 송도공원에 미리 모여 선전 유인물 배포를 준비하고, 시위 학생들이 합류할 것을 기다렸으나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제지당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30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30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되어(2심 미결구류일수 중 50일 본형 산입) 징역 6월의 옥고를 겪었다. 출옥 이후, 일본 나고야(名古屋)로 건너가, 도화공(陶画工)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 부문 나고야지부 동구분회 상임위원으로 세포 책임자로서 활동하다가, 1931년 12월 11일 붙잡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33년 11월 22일, 징역 1년 6월을 받고 다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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