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승기
嚴升基1895. 2. 24 ~ 1982. 3.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청년단 연합회 함경도의용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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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3) 1895년 2월 24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함흥면(咸興面) 풍서리(豊西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엄승기(嚴承基)를 사용하였다. 1919년 함흥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문서를 인쇄하고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11일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여 그 해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1년 대한청년단연합회 함경도의용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과 단원 규합 활동을 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 함경도의용대는 만주를 근거지로 둔 대한청년단연합회와 국내와의 연락을 지속하기 위하여 1920년 말 박경구(朴徑九)가 채규연(蔡奎淵)과 함께 조직한 단체로, 함남과 함북을 한 구역으로 조직하였다. 이 단체에서 주로 문서 배포, 본회와의 연락, 군자금 모금, 단원 모집 등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함흥면에서 군자금으로 140원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박경구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자 채규연·송염조(宋念祖) 등과 함께 통고문을 작성하여 국내로 보내는 등 활동을 이어가다가, 일제 경찰에게 활동이 탐지되면서 1921년 2월 6일 단원 17명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 공갈 등으로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이후 1924년 10월 29일 함흥 지역 유지를 중심으로 기근 구제기관을 조직할 때 참여하였다. 또 함흥산업조합에서 활동하였는데, 1937년과 1939년 함흥산업조합 정기총회에서 평의원으로 피선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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