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묵
吳秉默1881 ~ 1920. 10.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기독교우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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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출신이다. 1915년 당시 35세인 것으로 보아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연통납자(烟筒拉子)에 거주하였다. 이명으로 오병묵(吳丙默)·김병환(金丙煥)·정렬(貞烈)·두남(斗南) 등을 사용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병탄되자, 1906년 이상설(李相卨)·이동녕(李東寧) 등은 만주 지린성 옌지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에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북간도 최초의 민족교육 기관이었다. 서전서숙에 입학하여 을반에 재학하였다. 서전서숙은 2년간 운영하였으나 1907년 4월 이후 일제가 심해지자 자진 폐교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913년 훈춘에서 황병길(黃丙吉)·백규삼(白圭三)과 함께 기독교우회(基督敎友會)를 조직하였고, 훈춘 지역에서 교사로서 민족교육에 힘썼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더불어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을 작성하고,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과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의 북간도 지역 ‘토벌’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제1기 토벌’ 때,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는데,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전투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0년 10월 30일 만주 펑톈성(奉天省) 싱징현(興京縣) 왕청문(汪淸門)에서 일본군 76연대에 의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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