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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光洙

光洙

185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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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光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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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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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동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광무황제 강제 퇴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8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877년 오위장(五衛將) 가설(加設)에 임명되어 관직에 올랐다. 1907년 6월 동우회(同友會)에 가입하였다. 동우회는 홍재칠(洪在七), 다카하시 히사시(高橋久司) 등이 한일 양국의 국조 숭경(國祖崇敬), 양국민의 정신적 화목, 교육·자선·식산(殖産) 등의 발달을 꾀하고자 설립한 단체였다. 1907년 7월 17일 서울 중서(中署) 중곡(中谷) 동우회 사무소에서 열린 특별회의에 참석하였다. 당시 송병준(宋秉畯)·이완용(李完用) 등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어전회의에서 광무황제(고종)에게 양위를 요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에게 사죄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날 동우회에서는 광무황제의 일본행을 막아야 한다고 결의하였고, 친일파 대신들을 국적(國賊)이라 규탄하였다. 7월 18일 개최된 특별회의에서 광무황제에게 이완용·송병준 등에 대한 주살(誅殺)을 상소하고 백성들과 함께 광무황제의 일본행 저지 투쟁을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동우회는 종로의 포전도가(布廛都家)에 임시사무소를 마련하고 ‘만민공동회만인소청(萬民共同會萬人疏廳)’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경운궁(현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키고 있다가 광무황제가 일본으로 행차하는 시기를 알아낸 뒤 남대문 정거장(현 서울역)에 가서 이를 저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 뒤 회원들과 군중을 이끌고 대한문과 포덕문(布德門) 앞에서 시위를 이끌었고 제지하는 경관들과 투석전을 펼쳤다. 광무황제의 일본행이 와전(訛傳)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으나 물러서지 않고 양위를 반대하는 모임을 갖기로 하고 일단 해산하였다. 7월 19일 결국 광무황제의 양위가 결정되자 동우회는 백성들과 함께 이를 막기로 결의하고 다음날 황궁우 옆에 있던 석고단(石鼓壇)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7월 20일 석고단 집회에 참가하였는데 이때 한 회원이 죽여야 할 매국(賣國) 대신들이 입궐하였기 때문에 그리 할 수 없으니 이완용(李完用) 집에 불을 지르자고 외쳤다. 이에 강태현(姜泰鉉)·송영근(宋榮根) 등과 함께 결사대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여 서소문 밖 이완용의 집을 방화, 소각하고 일진회 기관지를 발행하던 국민신보사(國民新報社)도 공격하였다. 그럼에도 같은 날 경운궁에서 광무황제의 양위식이 거행되었다. 7월 21일 일본군은 동우회에 대중집회 금지를 명령하였고, 7월 25일 경시청(警視廳)이 동우회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였다. 7월 28일 회원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으며, 8월 윤이병 외 19명과 함께 감옥서로 이송되었다. 1907년 12월 29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10년을 받았다. 1908년 1월 16일 전라남도 진도(珍島)로 유배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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