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렬
吳相烈1879. 3. 4 ~ 1907. 1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태원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김태원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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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79년 3월 4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본량면(本良面,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에서 오영근(吳永根)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호는 의재(義齋), 본명은 기완(起完)이고 일명 인섭(寅燮)이라고도 불렸다. 1906년 김태원(金泰元)·김율(金聿)·오성술(吳成述) 등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도통장(都統長)으로 참여하였다. 의병을 일으킨 이후 김태원 의병부대는 고창(高敞)·영광(靈光)에서 활동하였고,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도 가담하여 선봉이 되었다. 김태원 의병부대는 기삼연과는 별도로 활동하며 나주(羅州)·함평(咸平)·장성(長城) 등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하였고, 때로는 기삼연 의병부대와 연계하여 법성포(法聖浦, 현 영광군 법성면)를 공략하는 등 연합작전을 펼칠 때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광주군 대명동(大明洞,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명곡마을) 산속에 무기창(武器廠)을 만들고, 광주 무등산(無等山)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200여 명을 사살하였다. 나주 석문산(石門山)에서도 일본군과 5일 동안 전투를 벌여 100여 명을 사살하였다. 이밖에도 창평(昌平) 무동촌(無童村, 현 담양군 남면 무동리), 나주 풍치(風峙, 현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근처) 등지에서도 활약하였다. 1907년 12월 23일 광주군 본량면 용진산(勇珍山) 사호치(沙湖峙,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에서 일본군과 만나 45일간 격전을 벌였으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양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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