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원
吳相元1844 ~ 1909. 6. 1
관련 단체
- · 이범윤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범윤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역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65세로 기록되어 있어, 1844년생으로 추정된다. 재판 당시 주소가 중국 간도(間島) 백초구사(百草溝社) 개전동(芥田洞)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상의 시점에 간도로 이주해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진다. 의술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이범윤(李範允)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노령(露領)과 함경도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2월 러시아 연추(烟秋, 현 크라스키노)에 있는 이범윤의 집에서 김영선(金永善)·김찬호(金鑽鎬) 등과 함께 친일적인 한국 정부를 전복하고 일본 군대를 몰아내어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목표로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이때 군사(軍師)를 맡아 부대의 구성에서부터 작전 지시까지 의병부대 운용의 전반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다. 1908년 (음)2월부터 1909년 1월까지 윤병도(尹炳道)를 서강(西江, 북간도 지역)에, 박승규(朴勝奎)를 수청(水靑, 현 파르티잔스크)에, 김찬호(金瓚鎬)를 이만(吏灣, 현 달네레첸스크)에 각각 파견하여 의병 수 백명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탄약을 지급하여 무장시켰다. 이처럼 의병을 모집하는 동시에, 1908년 (음)6월 김영선에게 의병 200명과 함께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으로 이동하여 영산(靈山, 현 회령시 창태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같은 해 (음)7월에는 김찬호에 명하여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북 종성군(鍾城郡)으로 출진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월신사(月新社) 걸만동(傑滿洞) 부근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이후 1909년 2월 17일에 열린 1심과 4월 15일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내란으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4월 27일 대심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경성감옥에서 투옥되었다가, 그 해 6월 1일 교수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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