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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운

吳聖云

185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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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성운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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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長城)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박용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박용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상면(北上面) 덕치리(德峙里, 현 북하면 덕재리) 출신이다. 이명은 오성삼(吳成三)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1909년 당시 51세로, 185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의병 활동에 참가하였다. 1907년 일제가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강제 체결로 한국의 내정을 침범하여 군대 해산을 강행하였다. 일제의 심각한 국권 침탈에 분노한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1909년에 이르러는 의병활동이 더욱 왕성하게 지속되었다. 그러나 의병활동의 고조화에 따라 일본군의 탄압도 가중하였음으로써 많은 의병부대는 해산되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서 박용식(朴鏞植)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용식 의병장은 일본군의 의병 탄압이 가중된 1909년에, 더 많은 사람을 의병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의병 봉기 격문과 통문을 작성하여 휘아의 의병들으로 하여금 전라남도 일대에서 격문을 배포하도록 하였다. 이때 박용식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의병 봉기 격문과 통문을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다. 목판 조각을 담당하는 김봉의(金鳳儀) 의병, 인쇄판을 소지한 김봉선(金鳳善) 의병과 함께 인쇄물을 만들어서 주막 등 다양한 곳으로 배포하였다. 장성군, 광주군(光州郡) 등지에서 격문을 배포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09년 7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2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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