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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성

吳民聲

1916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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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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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의용대
  • · 화북조선독립동맹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료에 따르면 1916년생으로 추정된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원수를 갚는 것이 한국인의 원수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민족혁명당 청년 83명과 함께 1937년 12월 1일 장시성(江西省) 싱쯔현(星子縣)의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훈련반(일명 星子分校, 후에 강릉분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창립되자 여기에 참여하였고, 조선청년전위동맹 계열이었던 조선의용대 제2구대 소속으로 뤄양(洛陽)의 제1전구 장관 사령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여름 조선의용대 주력의 일원으로 화베이(華北)의 팔로군(八路軍) 근거지로 이동하여 현지의 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 인원들과 합세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결성하고 조청에 가입하였다. 조청은 다시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 독립동맹)으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개칭되었고, 독립동맹 진찰기군구(晉察冀軍區)분회의 소속원으로 활동하였다. 진찰기지구는 한국인이 많았던 베이핑(北平, 北京)·텐진(天津)·당산, 지둥(冀東)의 한국인 농장지대,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과 국내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는 지역이었다. 1942년 7월 화북조선청년연합회 제2차 대회에서 결정된 관내지방 적 점령구와 한국 국내 그리고 동북지방 공작 방침에 따라 이상조(李相朝)와 국내, 동북 지하공작원으로 파견되었다. 임무는 첫째, 동북과 조선의 기성 반일단체와 화베이의 독립동맹과 연계를 건립한다. 둘째, 허헌(許憲) 등 진보적 민족주의자들과 접촉, 통일전선을 건립한다. 셋째, 허헌을 매개로 정백(鄭栢)·박헌영(朴憲永) 등 공산주의자들과 연계한다. 넷째, 동북의 항일무장부대와 연계하고 동북지방 조선청년들을 참가시켜 항일무장 역량을 강화한다. 다섯째, 기성 조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력으로 반일 한민족 통일전선을 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1943년 10월 조선하얼빈에 독립동맹 북만특별공작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독립동맹 진찰기분맹원으로 활동하던 중 1945년 4월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염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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