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진
延義鎭1902 ~ 1919. 4.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홍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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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내촌면(乃村面) 물걸리(物傑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2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고향 물걸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로부터 희생되었다. 물걸리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인물은 같은 마을에 사는 천도교인 김덕원(金德元)이었다. 김덕원은 천도교 장두(狀頭)로 부장두 전성렬(全性烈)과 전우균(全祐均)·전영균(全榮均)·양도준(梁道俊) 등 물걸리에 거주하는 천도교인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물걸리는 면사무소나 헌병주재소 등 관공서는 없었지만, 영동과 영서의 물화(物貨)가 교류하는 요충지로써 주막과 마방(馬房), 상업용 창고가 있었다. 또 상설시장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홍천군 뿐만 아니라 인접한 인제군(麟蹄郡) 등지의 교통중심지였다. 주도자들은 이러한 물걸리 지역 이점을 이용하여 물걸리 뿐만 아니라 내촌면 와야리(瓦野里)·문현리(文峴里), 이웃 마을 화촌면(化村面) 장평리(長坪里), 서석면(瑞石面) 수하리(水下里), 인제군 기린면(麒麟面) 상남리(上南里), 내면(內面) 방내리(坊內里) 등지 천도교인과 주민들에게도 시위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였다. 주도자들은 장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전영균의 다락방에 모여 시위 때 쓸 태극기를 직접 만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시위를 준비하던 주도자들은 4월 1일에는 홍천면 장터에서, 다음날인 4월 2일에는 동면(東面)에서 시위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에 4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거사 전날인 4월 2일, 같이 시위를 준비하던 물걸리 이장(里長) 김홍이가 계획을 누설하고 말았다. 곧 헌병보조원 홍재호(洪在浩)와 윤모(尹某) 등이 염탐하기 위하여 장터에 나타나자 김덕원과 전성렬이 홍재호 등에게 시위 계획을 비밀로 해줄 것을 호소하였지만 거부당하였다. 이에 김덕원과 전성렬은 분노하여 두 사람을 가두었지만 탈출하여 다음날 시위 저지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3일, 물걸리 장터로 향하였으며, 장터에는 주민과 인근 지역에서 모여든 장꾼 등 1,000여 명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 날 정오 무렵 전영균의 한약방에 태극기가 걸리고, 시위 주도자들은 주민과 장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이어 전영균·김자희(金自喜)·이기선(李基先)이 각각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장터로 들어왔다. 양도준(梁道俊)이 징을 울리며 만세시위의 시작을 알렸고, 전성렬이 만세운동 사회를 보았다. 김덕원이 개회 연설을 하고 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어서 전우균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때 이문순(李文淳)의 만세 선창에 시위대와 같이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후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가 있는 도관리(道寬里)로 향하였다. 이때 미리 잠복하고 있던 홍재호·박연흥(朴連興) 등 헌병들이 나타나 공포탄을 쏘며 시위대를 막았다. 헌병들의 저지에도 시위대가 행진을 멈추지 않자 홍재호 등 헌병 7명이 군중들을 향하여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였다. 헌병의 총격에 함춘선(咸春先)·승만수(承萬壽) 등 20여 명은 부상당하고, 전영균·양도준·이순극(李順克) 등 7명과 함께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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