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亨雨
亨雨1901 ~ 1930. 9.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항일유인물 배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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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김화읍 읍내리(邑內里, 현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김화읍 읍내리) 출신이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18세로 1901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만세운동을 촉구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현 배재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太和館)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서울 시내에서는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같은 학교 2학년생 이봉순(李鳳舜)과 함께 서울 시내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후 같은 학교에 다니는 4학년 장용하(張龍河) 등이 3월 초부터 항일독립문서를 제작하여 서울 시내에 배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같이 동참하였다. 1919년 4월 13일 서울 종로구(鐘路區) 와룡동(臥龍洞)에 거주하고 있던 당시 중앙학교(中央學校) 4학년생 서정기(徐廷基)의 집에서 장용하·이춘봉(李春鳳) 등과 함께 등사판을 사용하여 「팔면(八面)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라는 문서를 편집하고 인쇄하였다. 이 문서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 조선 민족은 일본인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일본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비판하였다. 이어 장용하·이춘봉 등과 함께 이 문서를 1부 8장씩 20부를 인쇄하여 서울 시내 각 집을 돌며 배포하였다. 4월 22일에는 또 다시 장용하 등과 같이 「반도의 목탁」 제3호를 제작하였다. “조선은 조선인의 조선이다. 조선인은 이의 독립에 힘써야만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유인물 100여 장을 인쇄하여 서울 시내 각 집에 직접 배포하였다. 그리고 4월 25일에는 「반도의 목탁 특별호」 제목 하에 “내무부장관이 조선에 있는 서양인 7명을 초대하여 시국에 관련한 의견을 질문했는데 그 서양인이 조선인을 동정하는 답변을 하였다”는 내용을 편집한 인쇄물 70장을 서울 시내를 돌며 집집마다 배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12일 경성복심법원으로부터 원판결이 취소되어 출판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으며, 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만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이듬해 영친왕(英親王)의 혼인으로 내려진 ‘은사령(恩赦令)’으로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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