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禮濟
吳濟1898. 8. 9 ~ 1978. 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연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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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8년 8월 9일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은천면(銀川面) 연남리(蓮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물산조합 서기로 재직 중이었으며, 3월 30일 연백군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을 전후로 연백군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3월 15일 금산면(金山面)·연안면(延安面)을 시작으로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은천면에서는 3월 하순부터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주도적으로 계획한 이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최은희(崔恩喜)였다. 최은희는 3월 1일 경성의 탑골공원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고향인 은천면으로 돌아와서 배천(은천면 연남리와 연동리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목적으로 비밀리에 가져온 ‘동포(同胞)여 일어서자’는 격문을 고향의 젊은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그 때 사립창동학교 교사 이정식(李廷植)과 송흥국(宋興國), 곡물검사원 조기복(趙起福)과 함께 최은희가 가져온 격문을 읽었다. 이후 그들은 잡화상 조면식(趙冕植)·염천태(廉天太)·이완구(李玩求),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유재현(劉在賢)과 조두섭(趙斗燮), 인천상업학교에 다니던 유택선(劉澤瑄)과 함께 배천장터가 열리는 3월 30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였다.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과 격문을 제작하였으며, 송흥국은 금융조합에서 빌린 등사판을 이용해서 최은희가 경성에서 비밀리에 가져온 독립선언서와 격문 등을 등사하였다. 3월 30일 정오부터 배천장터에서 열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송흥국은 장터 정중앙에서 절구통을 갖다 놓고, 절구통 위해서 만세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충고문을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난 후, 시위대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대를 이끌고 행진하였다. 일제 관헌은 배천장터가 열리는 3월 30일에 만세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장터 일대에 감시를 강화하였지만, 2,000여 명이 운집한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할 수 없었다. 결국 출동한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서 위협 사격을 하면서 강경 진압을 실시하였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재차 상고했으나, 같은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징역 8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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