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龍辰
吳辰1905. 1. 4 ~ 1979. 9.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강화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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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5년 1월 4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양사면(兩寺面) 철산리(鐵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오용진(吳用辰)을 사용하였다. 1920년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20년 (음)7월 15일 임두엽(林斗曄)과 함께 인근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거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같은 마을에 사는 임순학(林淳鶴)의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고 그 위에 “조선독립 만세! 슬프고도 슬프구나. 이 글을 보고 노소를 불문하고 (음)7월 20일에 만세를 불러야 한다. 이 말에 응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은 자이다”라는 문구를 기재하였다. 이후 이들은 태극기를 철산리 주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부착하였다. 1920년 (음)8월경에는 황준실(黃俊實)과 도모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양사면사무소에 은밀하게 모여 백지 한 장에 태극기 문양을 그리고 ‘독립만세’라는 4글자를 기입하였다. 또한 “우리 동포들은 이 글을 보라. 애통의 마음은 누구나 있고 이 마음이 없는 자는 금수와 다르지 않다. 애국심을 모르느냐”, “공자 왈,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는데 왜 두 임금을 받들어야 하는가, 철산리 300개구 중 이와 같은 광고가 1장도 없다. (음)8월 7일에 만세를 부르지 않는 자는 금수와 다르지 않다” 등의 문구가 기재된 격문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앞서와 마찬가지로 철산리 주민들이 잘 확인할 수 있도록 마을 중앙에 위치한 게시판에 이를 게재하였다. 이 일로 철산주재소 경찰에 붙잡혀 1920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0년 11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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