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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호

郭善浩

1896. 10. 17 ~ 195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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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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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봉산(鳳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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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독립청년단 사건(봉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896년 10월 17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문정면(文井面) 어수리(御水里)에서 곽상정(郭相鼎, 일명 郭相弼)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포산(苞山)이다. 미국 북감리회 계통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1914년경 경성종로청년회(京城鐘路靑年會) 목공과(木工科)를 졸업하였다. 1915년경 고향인 봉산으로 돌아와 주일학교 교사 등 교회 관련 일을 하면서, 논 5,000평, 밭 2,000평 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1920년 6월 6일 이웃에 살던 종형제 곽익호(郭益浩)의 집에서 열린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조선독립청년단(朝鮮獨立靑年團, 독립청년단)의 지회(支會) 결성식에 참여하였다. 이 자리에는 곽익호를 비롯해 손재흥(孫再興)·김청풍(金淸風)·이정률(李廷律)·권국빈(權國彬)·김치은(金治殷)·변인봉(邊麟鳳)·김태용(金泰鏞)·손봉국(孫鳳國)·변도준(邊道俊) 등 다수가 참석하였다. 원래 조선독립청년단은 1919년 음력 8월경부터 조직되기 시작해서, 황해도 각 군에 징수위원을 두고 인구세(人口稅)와 애국금(愛國金)을 모집해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제공하는 활동을 해왔다. 결성 당일 이들은 조선독립청년단의 목적으로 “1)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송부할 것, 2)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조선인 경찰 관리 및 밀정을 살해할 것, 3) 조선인으로서 요구되는 독립운동 자금의 제공을 거부 또는 독립운동자를 관(官)에 밀고한 자는 살해할 것, 4) 조선 내의 독립운동 상황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고할 것, 5)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송부해온 독립운동 선동 인쇄물을 일반 조선인에게 배포하여 그 사상을 선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단장(團長) 손재흥, 부단장 이정률, 총무 김청풍·김태용, 서기 변인봉·김치은, 교통원(交通員) 등의 임원을 선정하였다. 이때 곽익호·권국빈과 함께 교통원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동지를 규합하고, 김청풍으로부터 『독립신문』을 건네받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자 곽익호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다가 실패하였으며, 1920년 11월 4일 사리원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얼마 후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瑞興支廳) 검사분국으로 송치되었으며, 그해 12월 28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예심이 종결되었다.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죄처벌령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미결 구류일 중 12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22년 7월 20일 형 집행 만기로 석방되었다. 1934년 이른바 「칙령(勅令) 제20호」에 따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복권(復權)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제적등본상 사망일은 1944년 8월 12일로 기재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950년 12월 18일 전쟁 중에 월남하다가 개성(開城) 인근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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