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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吳廷根

1886. 12. 8 ~ 195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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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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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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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12월 8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덕봉리(德峯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오욱여(吳旭汝)·오천근(吳千根)을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안성군 양성면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안성군 양성면에서는 1919년 4월 1일 저녁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원곡면에서 출발한 시위군중은 양성면 동항리로 행진해 양성면민과 합류하였고, 약 2,000명 규모로 늘어난 많은 시위대 인원들은 다음날 새벽까지 시위를 펼쳤다. 시위 군중은 횃불을 들고 태극기를 앞세워 양성면과 원곡리 일대를 돌면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주재소와 우편소, 면사무소, 일본인 상점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4월 1일 밤 10시 무렵 시위군중은 양성면 경찰관주재소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돌을 던져 주재소를 파괴하고, 주재소의 각종 문서와 기물을 불태웠다. 뒤이어 양성우편소의 각종 물품, 전화기 등을 파괴하고 전화선을 절단하였다. 또한 일본인 상인과 일본 대금업자를 공격했고, 양성면사무소의 서류와 물품을 파괴하고 소각하였다. 주재소의 순사들이 이를 진압하려 했지만, 많은 군중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시위대는 마지막으로 새벽 4시경 원곡면사무소까지 공격하고 해산하였다. 안성경찰서는 시위 이후 원곡면과 양성면의 주민 수백 명을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이후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은 내란죄의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해당 건을 경성지방법원으로 이관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20일 경성지방법원은 절차상의 이유로 본 건을 수리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였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미경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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