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화
吳貞嬅1899. 1. 25 ~ 1974. 11.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1)
관련 사건
- · 고양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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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1) 1899년 1월 25일 서울 종로구(鐘路區) 관훈동(寬勳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애기(吳愛基)이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20세로, 고양군(高陽郡) 용강면(龍江面) 동막상리(東幕上里, 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일대)에 위치한 사립 흥영학교(興英學校)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양군 용강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5일 덕수궁 경찰관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정호석(鄭浩錫)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정호석은 고종의 장례와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3월 5일 오전에 휴가를 내어 광목 한 자를 산 뒤 동막상리에 있는 집에 돌아와 ‘대한국 독립만세’라는 혈서를 쓰고 태극기를 그렸다. 깃대를 만들어 자신의 딸이 재학하고 있는 흥영학교로 이동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5일 오전 11시경 정호석의 시위를 보고는 흥영학교에서 함께 재직하고 있던 동료 교사 박성철(朴性哲)과 함께 시위에 가담하였다. 이때 흥영학교의 학생 64명을 인솔하여 만세시위에 가담하도록 독려하였다. 시위 행렬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용강면 공덕리(孔德里, 현 마포구 공덕동)까지 행진하였다. 동막헌병주재소장은 흥영학교 교장으로부터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뒤 출동하였다. 이날 시위를 독려했다는 이유로 정호석·박정철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거쳐 공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 산입)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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