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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현

元夏鉉

1878. 6. 2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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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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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寧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영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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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1919년 영월군 주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78년 6월 21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 금마리(金馬里, 현 주천면 금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1일 영월군 주천면(酒泉面) 주천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영월군에서는 1919년 4월초부터 천도교인들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면서 번번이 실패하였다. 주천면 만세운동은 영월군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시위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만세시위를 계획한 박광훈(朴光勳)·이병익(李炳翼)·박재호(朴在鎬)는 모두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었다. 박광훈 등 주도 인물들은 4월 20일 오전에 만나 만세시위를 결의하였고, 박춘희(朴春喜)·김창진(金昌鎭)·박수찬(朴受燦)이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를 만들어 만세운동에 동참할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주도자들이 와서 시위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독려하자, 평소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서명하였다. 오후에 영월 군수 석명선(石明瑄)이 금마리에서 강연하는 때에 맞춰 시위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렸지만, 군수의 일정 변경으로 만세시위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4월 21일 아침, 주도 인물들로부터 취소된 군수의 강연이 당일에 열린다는 소식을 받고, 시위를 위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주민들과 태극기를 들고 금마리와 주천리 길목에서 군수 일행을 기다렸다. 그곳에 장날을 맞아 장터로 가던 주민들까지 합세하면서 200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시위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무렵, 강연을 끝내고 주천리로 향하던 군수 일행과 길목에서 대치하였다. 주도 인물들이 앞으로 나와 군수에게 태극기를 쥐여주며 만세 선창을 요구하였다. 군수가 군중들의 힘에 눌러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과 같이 소리를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박광훈과 이병익은 군수 일행에게도 「만세연명부」에 서명케 한 후 이들을 앞세우고 시위를 펼쳤다. 주동자들의 뒤를 따라 주천장터 곳곳을 누비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시위를 마친 후 자진 귀가하면서 만세시위도 마무리되었다. 저녁 무렵,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는 주천헌병파견소 헌병과 보조원, 보병들을 동원하여 만세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 작전을 펼쳤다. 이에 집에 있다가 헌병들에게 붙잡혔다. 이때 모두 69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7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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