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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기

柳道基

1870. 7. 2 ~ 1939.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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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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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원(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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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천안군 갈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0년 7월 2일 충청남도 천원군(天原郡, 현 天安市) 동면(東面) 용두리(龍頭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흥(高興)이고, 유관순(柳寬順)의 종조부이다. 1919년 당시 기독교 신자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의 갈전면(葛田面, 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의 병천시장(竝川市場, 아우내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병천시장 만세운동은 각각 별도로 준비되던 갈전면과 수신면(修身面)의 만세시위 계획이 하나로 합쳐져 대규모 만세시위로 발전되었다. 이 만세시위는 규모면에서도 대규모였지만,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1919년 만세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만세시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병천 지역에서의 만세시위 준비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3월 13일 귀향한 이화학당(梨花學堂)의 학생 유관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3월 16일 유관순은 부친 유중권(柳重權), 숙부 유중무(柳重武)를 비롯한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이백하(李伯夏) 등 지역 유지 20여 명과의 모임에서 서울 만세운동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동시에 병천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안하였다. 참석자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곧바로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협의를 통해 병천시장 장날인 4월 1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이후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의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지역의 어른으로서 조카인 유중권·유중무와 종손자인 유관순 등 친인척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만세운동 준비를 후원하였다. 수신면에서는 고종 인산을 보러갔다가 만세운동을 체험하고 귀향한 이순구(李旬求)를 시작으로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박영학(朴永學)·한동규(韓東圭)·이백하 등과 만세운동을 논의하여 4월 1일 병천시장 장날에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백하는 두 지역에서 각각 준비되고 있던 만세운동 계획에 모두 참여하고 있었지만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지역의 만세운동 계획은 병천지역에서 만세운동의 연락원으로 활동한 김상훈(金相勳)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었다. 3월 31일 밤, 다음날 예정대로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신호로 매봉산을 중심으로 천안으로 가는 길목인 수신면 산마루, 충청북도 진천(鎭川)의 고갯마루에 봉화를 올렸다. 이를 보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음날의 만세시위 참여를 다시 한번 결의하였다. 4월 1일 아침 일찍 유중권·유중무·유관순을 비롯한 집안 사람들과 함께 병천시장을 향해 출발하였다. 오후 1시경 장터의 한가운데 대형 태극기를 세우고, 조인원이 나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유중권·유중무·조병호(趙炳鎬)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이것을 신호로 주변의 사람들이 품속에 감추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유중권·조인원 등의 지휘에 따라 대열을 형성하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병천시장 곳곳을 행진하였다. 병천헌병주재소의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 해산을 명령했으나, 3,000여 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대는 고작 5명에 불과한 일제 헌병들의 해산 명령에 불응하고 더욱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상황에 당황한 일제 헌병이 만세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여 김상헌(金相憲)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분노한 시위대는 철수하는 일제 헌병들을 쫓아가 총기 발포에 대해 격렬하게 책임 추궁을 하였다. 만세시위의 양상이 격렬해지자, 조인원이 나서 잠시 시위대를 진정시켰으나,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계속하여 총검을 휘둘러 유관순이 부상당했고, 유중권은 사망하였다. 조카와 손녀의 희생을 보고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기에 한동규·이백하·이순구·김상철(金相喆) 등과 함께 헌병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돌을 던지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대의 사기를 북돋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병천의 헌병주재소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일제 당국은 천안에서 철도엄호대 6명을 병천으로 급파하였다. 이들은 오후 4시경 병천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병천의 헌병대와 합류하여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발포로 대응하며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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