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柳東烈

東烈

1896. 9. 19 ~ 1956. 8.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東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운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6년 9월 19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운산면(雲山面) 소중리(小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 해 4월 8일 소중리를 중심으로 한 서산군 운산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산군 운산면 만세운동은 4월 5일부터 10일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최초의 만세시위는 오인탁(吳仁鐸) 등이 고산리(古山里)에서 주도한 4월 5일의 횃불 만세시위였고, 이후 용현리(龍賢里)·갈산리(葛山里)·여미리(余美里)·수평리(壽坪里) 등 운산면의 각지에서 꾸준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4월 8일에는 운산면 내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날 용현리에서는 이봉하(李奉夏)·허후득(許後得)·나상윤(羅相允)의 주도로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고, 여미리에서는 이날 밤 10시경 주민 300여 명이 횃불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고향 마을에서의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4월 8일 소중리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주변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의기투합하여 4월 8일 밤 소중리를 중심으로 주민 300여 명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시위는 강제 해산당하였고, 여러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