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東烈
東1895. 1. 13 ~ 1974. 10.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장수군 산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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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5년 1월 13일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산서면(山西面) 건지면(乾芝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북 장수군 산서면 동화장터 만세시위는 평소 반일 감정을 지닌 유생(儒生) 박정주(朴政柱)가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동화리 장날을 기해 일으켰다. 3월 19일 오후 3시경 동화리 장터에 도착한 박정주는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 2개를 긴 장대에 꽃아 주민 정봉수(丁奉洙)·정호현(丁豪鉉)에게 이를 들게 한 후,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장터에 온 주민들에게 ‘독립만세’를 함께 부를 것을 촉구하였다. 이때 장터에 왔다가 박정주가 주도한 시위에 참여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약 2백 명에 이르렀다. 동화장터의 만세시위가 거세지자, 동화헌병주재소 헌병보조원 장재권(張在權)은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박정주·정봉수·정호현에게 즉시 해산할 것을 명령했으나 시위 주도자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일제 헌병은 박정주 등 3인을 헌병주재소에 잡아갔다. 이때 만세시위대의 일원으로 동화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체포한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만약 석방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구해낼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그러자 오후 5시경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일제 헌병들은 주도 인물 3인을 모두 석방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풀려난 사람들을 끌어안고 산서면사무소 앞으로 행진하였다. 이곳에서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여러 차례 외친 후, 박정주의 독립을 경축하는 연설을 듣고 나서 스스로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들은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5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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