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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東壽

東壽

1898. 2. 2 ~ 198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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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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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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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2월 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동(水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명으로 동욱(東旭)·만수(晩秀)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군 편향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 등은 3월 15일 편항시장 동편 공동 타작장[인낙장(籾落場)]에서 만나 시위를 결의하고, 임동면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각자 맡은 곳의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수곡동을 책임진 유교희(柳敎熙)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3월 21일 편항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니 참여해서 모두 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였다. 유교희의 제의에 만세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거사 당일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인근에서 큰 규모의 장이 열리는 편항시장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하여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오후 2시경 유연성이 장터 중앙으로 나왔다. 유연성은 군중들에게 만세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연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유연성의 만세 선창에 군중들과 함께 일제히 ‘독립만세’로 화답하였다. 시장 곳곳에서 울려 퍼진 만세소리에 장꾼과 주민들도 동참하여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시위 열기가 점점 더해갔다. 그 때에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현장에 급파되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 한 명이 배태근(裵太根)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하여 일제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제 경찰은 그 자리에서 주재소로 달아나 버렸다. 곧 이어 시위 장소를 주재소로 옮겼다. 이강욱·박진선(朴晋先) 등과 함께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 이르렀을 때는 500여 명의 군중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일제 경찰 한 명이 권총을 발사하였다. 경찰의 위협은 오히려 군중의 분노를 폭발시켰을 뿐 시위대는 출입문을 부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갔다. 시위대 일부는 달아나는 경찰을 쫓아가 철저하게 응징하기도 하였다. 주재소에 들어가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벽과 창문 등을 모조리 부쉈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는 책상과 의자 등의 기구와 비품을 파괴하고, 서류와 장부도 찢어 파기한 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일제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검과 주재소 안에 보관하고 있던 총탄과 대검 등의 무기류도 모두 모아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 안에 버렸다. 시위대의 격렬한 항거로 주재소는 뼈대만 남겨 놓은 모습이 되었다. 주재소 시위 이후 일부 군중들과 함께 해산하였다. 남은 1,000여 명의 군중들은 다시 면사무소로 가서 사무소의 벽과 유리창, 가스등을 부수고 사무소 안의 집기와 서류도 모두 파괴하였다. 만세시위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이어진 후 시위대가 자진 해산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부터 일제 군경은 관련자 체포 작전을 펼쳤고, 이때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고,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두 달 넘게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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