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鶴鳳
鶴鳳1885 ~ 193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4)
관련 사건
- · 1919년 홍원군 용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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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4)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용운면(龍雲面) 인흥리(仁興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3월 18일 홍원군 용운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원군 만세운동은 1919년 2월 28일 저녁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 이종일(李鍾一)로부터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안상덕(安商悳)이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2,000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지참하고 서울을 출발한 안상덕은 천도교 평강교구와 영흥교구를 거쳐, 3월 1일 홍원교구에 도착하였다. 강인택에게 보고를 받은 홍원교구장 강남섭(姜南燮)은 3월 7일 강인택·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 홍원교구의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이들은 주익면(州翼面, 이후 홍원읍) 성동리(城東里)의 장날인 3월 16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3월 13일에는 학천면(鶴泉面) 풍산리(豐山里)에 있는 강연상(姜鍊翔)의 집에 모였는데, 독립선언서 1.000장을 등사하고 조선독립 깃발을 제작하였다. 3월 16일 주익면 성동리 장터에는 장날을 맞아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오전 11시 천도교인들 중심의 집회가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시작되었다.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의 연설이 있은 후, 700여 명의 군중들은 홍원군청 쪽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홍원군청 앞에 다다르자 더욱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경찰은 시위 주도자 등에게 준비했던 붉은색 잉크를 뿌렸다. 경찰은 옷에 붉은색 잉크가 묻은 주도자들을 중심으로 60여 명의 시위대를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가운데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주익면 만세시위와 경찰의 탄압에 대해 듣고, 3월 17일 밤 유주득(劉朱得)·임삼수동(林三水洞)·장사월쇠(張四月釗)·최여심(崔汝深) 등과 회합하였다. 독립운동의 기세를 고양시키기 위해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거주지인 용운면 인흥리의 용운경찰관주재소(龍雲警察官駐在所)로 갔다. 3월 18일 새벽 돌을 던져 주재소 사무실의 유리창 수 십장을 깬 후, 사무실로 들어가 칸막이 등 기물을 부수었다. 그리고 경찰관근무서·근무일지·근무표·도수계(屠獸屆)·매장인허증철·투숙계(投宿屆) 등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으로 가지고 나온 공장부서류(公帳簿書類)를 파기하여 주재소 부근에 버리고 사라졌다. 이 일로 며칠 후 붙잡혔고, 1919년 5월 1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훼기(毁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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