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순
尹道淳1860. 7. 12 ~ 1930. 12.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월 28일 춘천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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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0년 7월 12일 강원도 춘천군(春川郡) 동면(東面) 감정리(甘井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天道敎人)이며, 천도교 봉훈(奉訓)을 지냈다. 1919년 3월 28일 춘천읍(春川邑)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1919년 춘천읍 만세시위는 춘천에 있는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당시 천도교 봉훈으로서, 춘천교구 교구장(敎區長) 이준용(李埈鎔)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준용과 독립선언서를 받은 후 본격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독립선언서는 3월 1일 이후 전국으로 배포되고 있었으며, 천도교에서는 교단 차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강원도에서는 2월 28일 평강교구(平康敎區)에 독립선언서가 도착하면서 철원군(鐵原郡)과 통천군(通川郡) 등지에 배부되기 시작하였다. 3월 4일 평강교구의 임종한(林宗漢)과 신윤철(申允喆)이 춘천과 양구(楊口)·인제(麟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기 위하여 선언서 150장을 숨기고 춘천에 왔다. 두 사람은 이튿날 춘천교구에 전달할 예정이었지만 당일에 체포되고 말았다. 도청 소재지인 춘천에서는 3월 1일 이후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를 강화하던 일본에 의해 임종한과 신윤철의 행적이 발각된 것이다. 두 사람은 묵고 있던 여인숙에서 붙잡혔으며 선언서도 모두 압수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춘천에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지 못하게 되자, 이준용과 선언서 없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준용과 북산면(北山面) 조교리(照橋里)의 천도교인 박순교(朴順交)를 만나 춘천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뜻을 함께할 교인들을 규합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3월 10일 동면(東面) 만천리(萬泉里)에 있는 천도교구 사무소에서 허기손(許基損) 등을 모아 놓고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설득하였다. 3월 13일에는 춘천면 가연리(佳淵里, 현 춘천시 죽림동)의 안동식(安東植)의 집을 방문하여 “도청 소재지인 춘천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수치”라며 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3월 14일에는 사북면(史北面) 송암리(松岩里)에 사는 차성강(車聖康)의 집에 가서 만세시위를 펼쳐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이 일본의 감시망에 포착되면서 붙잡히고 말았다. 이로 인해 춘천읍 만세시위 계획도 일시 중단되었다. 이에 이준용과 박순교 등은 급히 만나 논의한 끝에 만세운동을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3월 2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춘천읍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펼치기로 하였다. 그리고 3월 28일 거사 당일, 이준용·박순교·허기준(許基俊)이 주도가 되어 만세운동을 실행에 옮겼다. 비록 만세운동 준비 단계에서 체포되었지만, 춘천에 만세운동 분위기를 조성하고 춘천읍에서 만세시위가 펼쳐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붙잡힌 후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5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한 번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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