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淳
基淳1909. 10. 2 ~ 1942. 8.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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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909년 10월 2일 제주도(濟州島) 좌면(左面) 중문리(中文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길본기순(吉本基淳)을 썼다. 1938년 당시 제주도 중문면사무소 서기로 일하였다.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서귀면(西歸面) 서홍리(西烘里) 천주교회(현 서귀포성당)의 신도 회장을 맡았다. 이 교회의 신부 아일랜드인 어거스틴 스위니(Augustin Sweeney, 한국명 서(徐)신부)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1939년 11월 서신부와 함께 중일전쟁(中日戰爭)에 관한 시국담을 논하였다. 이 자리에서 서신부는 “지금 미국과 영국이 중국을 원조하고 있는 것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중국에 있는 미국과 영국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물자 부족으로 패전할 것이다”라고 설파하였다. 이에 동조하여 국제 정세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일제의 패전을 예견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41년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인을 동원하고자 이른바 지원병제도(志願兵制度)를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전시 강제동원에 대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에 항거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41년 12월경 서신부 등 간부 1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42년 8월 21일 광주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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