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七學
七學1898. 9. 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혁명위원회
- · 철혈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98년 9월 6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수황면(水荒面)에서 태어났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중국 간도 창바이현(長白縣) 13도구(十三道溝) 북구(北溝)에 거주하였다. 1923년 무렵 김호석(金浩錫)의 권유로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한국혁명위원회(韓國革命委員會)에서 활동하였다. 한국혁명위원회는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로 불리면서 1922년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홍병기(洪秉箕)·최동희(崔東曦) 등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결성되었으나, 주요 인물들이 연해주와 만주로 이동하여 활동하게 되면서 운동의 중심이 옳겨 가고 후일 고려혁명당·정의부 활동에 발전, 합류하였다. 한편 1923년 (음)6월 중순경 이경호(李景浩)·김중언(金重彦)·김광연(金光淵) 등이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 상의사(尙義社) 동불사(銅佛寺) 뒷산에서 철혈단(鐵血團)을 조직하였다. 철혈단은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을 목표로 하였다. 이들은 상하이(上海)에서 조직된 다른 동명의 조직과는 별개로 한반도 내에서 독립을 목표로 하다가 다시 만주로 돌아가 군자금 모집을 위해 한국과 만주 국경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주요한 활동 지역은 지린성 허룽현(和龍縣) 등이었으나 동지 일부가 체포되자 이경호는 지린성 훈춘현(琿春縣)으로 피신하였다. 이에 혼춘현에 대피해있던 이경호와 철혈단원들 사이에서 단체의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활동하기로 하여 군비의 마련뿐만 아니라 의거를 위한 폭탄을 준비하였다. 이에 이경호·김세록(金洗錄)·허용권(許庸權)·안세진(安世鎭)·이철모(李喆謨) 등과 함께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장총·폭탄 등으로 무장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면서 독립을 고취하는 문서 등을 배포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1924년 (음)4월 8일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4년 10월 3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폭발물취체규칙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24년 11월 7일에 열린 항소 공판에서 “대한 사람이 대한 민족을 위하여 일한 것이 무엇이 그르냐!”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1924년 11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원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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